
Mariah Carey — Fantasy: 톰톰클럽을 샘플링하고 올 더티 바스타드를 불러들이자, 최초로 빌보드 1위에 데뷔한 여성 아티스트가 되다
발라드 디바 이미지에 갇혀 있던 머라이어 캐리는 "Genius of Love"를 샘플링하고 올 더티 바스타드를 리믹스에 불러들이는 도박을 감행했다. 그 결과 "Fantasy"는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핫100 1위에 데뷔한 곡이자, 캐리를 힙합 시장으로 건너가게 한 다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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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 디바 이미지에 갇혀 있던 머라이어 캐리는 "Genius of Love"를 샘플링하고 올 더티 바스타드를 리믹스에 불러들이는 도박을 감행했다. 그 결과 "Fantasy"는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핫100 1위에 데뷔한 곡이자, 캐리를 힙합 시장으로 건너가게 한 다리가 됐다.

몽키숄더라는 이름은 몰트맨들이 밤새 삽으로 보리를 뒤집다 얻은 직업병에서 나왔다. 첫 모금은 거칠지만, 잠시 숨을 돌리면 바닐라향이 올라온다. 항공기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 늦게 음악을 시작한 빌 위더스의 "Lovely Day"와 함께, 거친 노동 끝에 남는 편안함을 따라가본다.
1973년 미국 최초로 아폴로 극장을 헤드라인한 영국 밴드는, 정작 고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채 1974년 해체했다. 그 그루브는 이후 40년 넘게 힙합 세대의 턴테이블 위에서 몰래 살아남았다.

RNB Station이 처음으로 직접 만든 곡이에요. 자정 넘어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는 순간을 노래에 담았어요.
팀의 얼굴이던 보비 브라운이 탈퇴한 뒤 흩어질 위기에 놓였던 뉴에디션은, 조니 길과 지미 잼·테리 루이스라는 새 조합으로 답했다. "If It Isn't Love"는 그 재정비의 결실로 그룹에 첫 톱10 히트와 유일한 그래미 후보 지명을 동시에 안겼다.
라산 패터슨은 브랜디의 "Baby"와 테빈 캠벨의 "Back to the World"를 쓴 송라이터였다. 정작 자신의 목소리로 부른 "Where You Are"는 1997년 R&B 차트 53위에 그쳤지만, 동료 프로듀서들은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저평가된 보컬리스트"라 부른다.

1985년 르네 앤 앤젤라는 "I'll Be Good"으로 R&B 차트 4위에 올랐지만, 이듬해 듀오는 갈라섰다. 12년 뒤 폭시 브라운과 제이지가 이 곡을 샘플링한 "I'll Be"로 빌보드 7위에 오르며, 멜로디는 원곡보다 더 유명해졌다.

해적 라디오에서 시작된 곡이 이름을 두 번 바꾸고서야 UK 개러지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정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프린스가 1981년 앨범 수록곡으로 남겨둔 "Do Me, Baby"를 1986년 여성의 시점으로 다시 부른 멜리사 모건은 이 곡으로 R&B 차트 정상에 3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그의 유일한 빌보드 Hot 100 진입곡으로 남아있다.

무단 샘플링으로 소송당할 뻔한 재즈-힙합 듀오가, 오히려 블루노트 전체 카탈로그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계약을 받아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허비 행콕의 곡은 빌보드 9위까지 올랐다.

언론이 부풀린 라이벌 구도를 직접 농담거리로 만들어버린 노래. 1998년 여름 13주간 빌보드 정상을 지키며 브랜디와 모니카 모두에게 커리어 첫 1위를 안겼다.

R&B 발라드로 쓰였다가 서랍에 묻힌 곡이, 프로듀서 한 명의 손을 거쳐 UK 개러지의 대표곡이 됐다. 25년 뒤 다시 커버되고, 다시 바이닐로 눌리는 곡의 이야기.

체스 레코드에서 시작해 캐뎃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소울 가수가, 어느 날 음악을 접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20년 가까운 공백을 끝낸 건 애시드 재즈 설립자가 끝까지 추적한 낡은 7인치 한 장이었다.

티부치가 겪은 바람기 이야기를 곡으로 옮기자, 멤버 레프트아이는 뮤직비디오에서 입에 검은 테이프를 붙이겠다며 반대했다. 그런데도 이 곡은 TLC에게 빌보드 핫100 첫 1위를 안겨줬다.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긴 이야기를 담담하게 눌러 부른 데뷔 싱글. 로널드 아이슬리와 알 켈리가 가세한 리믹스에서는 그 배신의 서사가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대로 펼쳐진다.

얼브 갓티가 갖고 온 샘플은 이미 비기(B.I.G.)의 클래식으로 낙인찍힌 비트였다. 신인이었던 아샨티는 반대했지만, 결국 이 곡은 그의 데뷔곡을 빌보드 10주 연속 1위로 만들었다.

소울 밴드가 우탱 클랜의 곡을 가사 없이, 관악기와 현악기만으로 다시 연주했다. RZA가 직접 스튜디오에 찾아와 듣고 갔던 이 프로젝트가, 2026년 새 패키징의 바이닐로 다시 발매된다.

"네오소울의 대부"라 불린 로이 에이어스가 세상을 뜬 지 1년 4개월. 2026년 7월, 그가 1972년에 남긴 앨범이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로 처음 돌아온다. 힙합이 반세기 동안 반복해서 빌려 쓴 브루클린 찬가의 이야기.

히트 싱글을 부른 목소리를 통째로 빼고, 힙합 래퍼 열 명에게 앨범 전체를 내준 실험작이 있었다. 영국에서 10년 넘게 절판됐던 그 음반이 2026년 화이트 바이닐로 돌아온다.

19살에 브랜디의 빌보드 R&B 1위곡 "Baby"를 공동 작곡한 소년은 3년 뒤 자신의 데뷔 앨범을 냈다. 스티비 원더에 비견되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그 앨범의 싱글은 R&B 차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