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mes Taylor Quartet — Blow-Up: '애시드 재즈'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이미 그 사운드였다
허비 행콕의 영화음악을 오르간으로 다시 쓴 데뷔 싱글. 이 곡을 실은 레이블이 훗날 애시드 재즈 레코드가 됐고, 이 밴드를 매니징하던 사람이 그 장르 이름을 농담 삼아 지어냈다.
지금까지 쌓인 모든 글 — 최신순으로 전부 둘러보기 (2/7페이지)

허비 행콕의 영화음악을 오르간으로 다시 쓴 데뷔 싱글. 이 곡을 실은 레이블이 훗날 애시드 재즈 레코드가 됐고, 이 밴드를 매니징하던 사람이 그 장르 이름을 농담 삼아 지어냈다.

라몬트 도지어가 스튜디오 피아노 앞에서 무심코 흥얼거린 후렴구 한 줄에 스모키 로빈슨이 꽂히면서 시작된 곡이, 모타운 최초의 전국적 댄스 크레이즈로 번졌다. 지난 7월 26일 발매 63주년을 맞았다.

줄리아드 음악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소프라노가 재즈 피아니스트 더그 칸을 만나 밴드 보컬로 방향을 틀었다. 1978년 낸 "Don't Let It Go to Your Head"는 빌보드 R&B 차트 54위에 그쳤지만, 14년 뒤 Brand New Heavies의 커버가 영국 댄스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Brand Nubian이 샘플링하면서 원곡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다.

형 몰래 전축에 올렸던 왬의 엘피, 서점 누나가 손으로 녹음해 팔던 빛바랜 테이프. 우리의 R&B는 그렇게 시작됐어요.

돈이 필요해 손을 벌릴 때마다 아버지가 되풀이하던 말을, 앤지 스톤은 그대로 데뷔 싱글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글래디스 나이트를 샘플링한 이 곡이 나온 지 이번 주로 27년, 그리고 그 목소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짐가방을 든 여자의 은유로 감정의 무게를 그려낸 곡은 에리카 바두의 첫 빌보드 톱10 히트가 됐다. 발매 25주년을 맞은 지금, 앨범은 오리지널 프로덕션 테이프에서 새로 리마스터되어 돌아왔고 바두는 그 전곡을 들고 다시 투어를 돈다.

가스펠 명가에서 태어나 위탁가정을 전전한 소녀가, 6년간 다른 그룹의 보컬로 무명 시절을 보냈다. 그가 서른 문턱에 겨우 낸 데뷔 싱글은 원래 휘트니 휴스턴에게 제안됐다가 거절당한 곡이었다. R&B 차트 5위까지 오른 이 노래로 미키 하워드는 데뷔했지만,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171위에 그쳤다.
1985년, 드럼머신 위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얹은 런던 삼인조가 빌보드 R&B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영국 밴드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올해로 41주년을 맞은 이 곡의 주인공들은, 지난 8월 초 런던 근교 무대에 다시 섰다.

하우스 뮤직 백보컬로 시작해 머라이어 캐리, 쿨 앤 더 갱, 빌리 오션의 세션 싱어로 커리어를 쌓은 윌 다우닝은 1988년 존 콜트레인의 영성 재즈 명반 "A Love Supreme"에 직접 가사를 붙여 데뷔했다. 반응은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왔다. 이후 30년 넘게 22장의 앨범을 내며 "소피스티케이티드 소울의 황태자"로 불렸지만, 빌보드 Hot 100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원년 멤버 넷의 목소리로 녹음됐지만, 뮤직비디오가 공개될 무렵엔 그중 둘이 그룹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 드라마가 낳은 곡이 26년 뒤 미공개 리믹스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즈펑크 명곡 "Forget Me Nots"로 그래미 후보에 오른 지 10여 년 뒤, 패트리스 러션은 새 앨범을 레이블에 넘겼다. 돌아온 답은 "우리가 원한 건 패트리스 러션다운 레코드였다"는 거절이었다. 앨범은 다른 레이블을 통해서만 세상에 나왔고, 그는 훗날 그래미 시상식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이 됐다.
안드레 해리스와 마샤 앰브로시우스가 로널드 아이슬리에게 주려고 쓴 곡은 퇴짜를 맞았다. 대신 자신들이 부른 노래가 플로트리의 유일한 빌보드 히트가 됐고, 두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뭉친 전국 투어의 이름이 됐다.

"사랑은 서두른다고 오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과 가스펠 한 소절에서 출발한 노래가 모타운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 오늘로 발매 정확히 60주년을 맞는다.

리한나의 "Umbrella"를 공동 작곡해 이름을 알린 작곡가 테리우스 내시는, 그 신뢰를 등에 업고 데프 잼과 솔로 계약을 맺었다. 19년 뒤인 2026년, 그는 그 데뷔작의 직속 후속작을 어셔·켈리 롤랜드와 함께 내놓았다.

무명 프로듀서 듀오였던 팀버랜드와 미시 엘리엇에게 곡 하나만 맡기려던 자리가, 알리야의 두 번째 앨범 전체로 번졌다. 그 앨범의 타이틀곡은 30년 뒤 에센스 페스티벌의 추모 무대 이름이 됐다.

재기드 엣지가 1999년 앨범에 실었던 곡은 웨딩싱어를 자처하고 나온 노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Let's Get Married"는 리믹스를 거듭하며 결혼식장의 표준 입장곡이 됐고, 2026년에도 재기드 엣지는 타이레스·탱크·실크와 함께 이 곡을 들고 무대에 오른다.

DJ Shadow와 Gang Starr부터 Drake까지, 힙합 프로듀서들은 수십 년째 이 목소리를 잘라 썼다. 정작 1969년 원곡 "Woman of the Ghetto"는 미국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가수"로 불린 목소리의 이야기.

1989년에 만들어졌지만 서랍 속에 있던 비트 하나가 1996년 진와인의 목소리를 만나 데뷔 싱글이 됐다. "Pony"는 팀버랜드를 알리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로듀서로 세운 곡이자,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인연이 무대 위에서 다시 불려나오는 곡이다.

1972년, 머슬숄스에서 녹음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레이블은 항공권을 도로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선공개 싱글 "Your Turn to Cry"가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Child of the Seventies는 그렇게 30년 가까이 창고에 묻혔다.
다른 가수의 솔로곡을 리믹스해 화이트 라벨 바이닐로 몰래 퍼뜨린 노래가, 같은 듀오의 다음 싱글 성공에 힘입어 뒤늦게 영국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처음 세상에 나온 지 27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