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애틀랜타 출신 4인조로, 벅헤드의 클럽 "112" 무대에서 숀 콤스 눈에 띄어 그 클럽 이름을 그대로 팀명으로 삼고 배드보이 레코드의 두 번째 R&B 팀이 됐다. 노터리어스 B.I.G.와 메이스가 피처링한 데뷔 싱글 "Only You"(1996)로 빌보드 R&B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데뷔 30주년을 맞은 2026년에도 토탈·케이스와 함께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RNB Station에서 다룬 아티스트를 모아봅니다.
애틀랜타 출신 4인조로, 벅헤드의 클럽 "112" 무대에서 숀 콤스 눈에 띄어 그 클럽 이름을 그대로 팀명으로 삼고 배드보이 레코드의 두 번째 R&B 팀이 됐다. 노터리어스 B.I.G.와 메이스가 피처링한 데뷔 싱글 "Only You"(1996)로 빌보드 R&B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데뷔 30주년을 맞은 2026년에도 토탈·케이스와 함께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Q-Tip과 Phife Dawg를 중심으로 한 미국 힙합 그룹으로, 재즈와 소울을 접목한 사운드로 90년대 힙합을 대표했다. 《부메랑》 사운드트랙에서는 유일하게 온전히 힙합인 트랙 'Hot Sex'를 맡아 발라드 위주였던 앨범에 다른 온도를 더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Mary Stallings의 딸로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힙합 프로듀서 Dred Scott과 함께 1997년 데뷔 앨범을 완성했다. 신시사이저 중심이던 당대 R&B와 달리 라이브 연주와 재즈 화성을 결합한 사운드로, 네오소울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기 직전 이미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Anderson .Paak은 캘리포니아 옥스나드 출신으로, 드럼을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는 독특한 원맨 밴드형 퍼포먼스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다. Dr. Dre와의 협업을 계기로 발매한 두 번째 앨범 *Malibu*가 힙합과 소울, 펑크를 넘나드는 사운드로 큰 호평을 받으며 네오소울과 힙합소울을 잇는 현세대 R&B의 대표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다.
쿠바계·푸에르토리코계 혈통의 뉴욕 브롱크스 출신 재즈-소울 싱어. 클래식 성악을 정식으로 공부했고, 세 옥타브 반에 이르는 음역대와 감정을 우선하는 창법으로 알려졌다. 여러 유명 가수가 먼저 녹음했던 "This Time I'll Be Sweeter"를 1978년 데뷔 싱글로 발표해 자신의 대표곡으로 만들었으며 2024년 세상을 떠났다.
2002년 데뷔 싱글 "Foolish"로 빌보드 핫100 10주 연속 1위에 오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R&B 가수다. 여리고 담담한 보컬이 특징이며, 데뷔 앨범을 통해 2000년대 R&B를 대표하는 신인으로 자리잡았다.
본명 Kenneth Edmonds, LaFace Records를 L.A. Reid와 함께 이끈 프로듀서 겸 싱어송라이터다. 부드러운 팔세토 보컬로 직접 노래도 부르며, 1992년 영화 《부메랑》 사운드트랙을 L.A. Reid와 총괄 프로듀싱해 90년대 초 R&B의 지형도를 만든 인물 중 하나다.
뉴에디션 멤버였던 Ricky Bell, Michael Bivins, Ronnie DeVoe 세 사람이 결성한 R&B 그룹으로, 힙합 비트와 R&B 하모니를 결합한 뉴 잭 스윙 사운드를 대표한다. 데뷔 싱글 "Poison"(1990)은 빌보드 핫100 3위, 빌보드 핫 블랙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90년대 R&B의 스트리트 감성 흐름을 이끈 곡으로 평가받는다.
2006년 두 번째 정규 앨범 *B'Day*로 R&B와 팝을 오간 대표적인 솔로 아티스트다. 니요가 컨트리 발라드로 구상했던 "Irreplaceable"을 R&B 프로덕션으로 다시 다듬어 10주 연속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려놓으며 커리어 최장수 1위곡으로 만들었다.
Bilal은 필라델피아 출신의 네오소울 보컬리스트로, 소울콰리언스와 함께 활동하며 실험적인 보컬 스타일을 선보여 왔다. 두 번째 앨범 *Love for Sale*이 레이블의 발매 거부와 유출 사태를 겪고도 얼터너티브 R&B의 선구적 작품으로 재평가받으며, 이후 *Airtight's Revenge* 등으로 이어지는 커리어의 기반이 됐다.
Teddy Riley가 이끈 뉴잭스윙 R&B 그룹으로, 1996년 앨범 *Another Level*과 대표곡 "No Diggity"로 널리 알려졌다. 이 사이트는 같은 앨범에서 싱글로 발매된 적 없이 묻혀 있다가 2023년 넷플릭스 영화 *Leave the World Behind*를 통해 27년 만에 재발견된 트랙 "Never Gonna Let You Go"를 다뤘다.
필라델피아 출신 4인조 R&B 보컬 그룹으로, 두왑의 하모니 감성을 현대적인 R&B 발라드에 이식한 사운드로 90년대를 대표했다. "End of the Road"는 1992년 빌보드 핫100 13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엘비스 프레슬리의 36년 묵은 기록을 깼고, 이후 "I'll Make Love to You", "One Sweet Day" 등으로 스스로 기록을 경신했다.
1985년 런던에서 결성된 영국의 애시드 재즈 밴드로, 1990년 보컬 은디아 대븐포트 합류 후 "Never Stop"으로 미국 R&B 차트 3위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2년작 *Heavy Rhyme Experience, Vol. 1*에서는 대븐포트의 보컬을 완전히 빼고 갱 스타·마스타 에이스 등 래퍼 열 명에게 앨범 전체를 맡기는 실험을 감행해 재즈 그루브와 힙합의 접점을 만든 밴드로 평가받는다.
로스앤젤레스 출신 소울 가수로,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프로듀싱한 Tabu Records 데뷔 앨범 Fragile(1984)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데뷔 싱글 'I Didn't Mean to Turn You On'은 2년 뒤 로버트 팔머가 커버해 세계적 히트가 되면서, 정작 원곡을 부른 그녀의 이름은 대중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모타운 그룹 DeBarge를 배출한 대가족 출신 솔로 가수로, 1986년 데뷔 이후 상승세를 타던 중 코카인 밀반입 혐의로 5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케다 매센버그의 네오소울 레이블에서 1997년 컴백작 *Long Time No See*를 발표했으며, 상업적으로는 조용했지만 수감 생활을 지나온 목소리의 그늘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미국의 R&B·팝 싱어송라이터로, 2007년 스타게이트가 프로듀싱한 발라드 "With You"로 열여덟 살에 빌보드 핫100 2위를 기록하며 두 번째 히트를 냈다. 2020년대 후반까지도 대형 투어(어셔와의 "The R&B Tour")를 헤드라인할 만큼 오랜 기간 상업적 영향력을 유지해온 2000년대 R&B의 대표적 남성 보컬리스트다.
르완다 대학살에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뒤 캐나다 퀘벡에 정착한 프랑스어권 R&B 싱어송라이터다. 2002년 데뷔 앨범 《Parce qu'on vient de loin》으로 프랑스·벨기에·스위스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2000년대 프랑스어권을 대표하는 R&B 아티스트로 자리 잡았지만, 프랑스어로 노래한다는 이유로 영어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사우샘프턴 출신으로 UK 개러지 듀오 Artful Dodger의 객원 보컬로 활동하다 2000년 데뷔 앨범 *Born to Do It*으로 UK 개러지와 미국식 R&B 송라이팅을 결합한 사운드를 만들었다. 타이틀곡 격인 "7 Days"는 영국 싱글 차트 1위, 빌보드 핫100 10위에 오르며 그의 유일한 톱10 진입곡이 됐고, 앨범은 2025년 25주년을 맞아 재발매됐다.
네오소울을 대표하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2000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 《Voodoo》로 당시 R&B의 깔끔한 비트 중심 흐름과 반대되는 헐거운 라이브 그루브를 선보였다. 앨범 수록곡 "Untitled (How Does It Feel)"은 최소한의 악기 편성과 관능적인 보컬로 네오소울 역사상 대표적인 트랙으로 꼽힌다.
시카고 출신 R&B 가수로, Blackstreet 초기 멤버로 활동하며 2Pac의 "Brenda's Got a Baby", "Keep Ya Head Up"에 참여했으나 그룹 최대 히트곡 "No Diggity"가 나오기 전에 팀을 떠났다. 이후 솔로로 전향해 두 번째 앨범 *Chicago '85... The Movie*(2000)의 리드 싱글 "One Woman Man"으로 솔로 커리어 최대 히트를 기록했다.
레온 미첼스(Leon Michels)가 이끄는 브루클린의 소울 밴드로, 뎁톤(Daptone) 계열 빈티지 소울 사운드를 현재로 되살리는 씬에서 활동했다. 2009년 앨범 *Enter the 37th Chamber*에서 우탱 클랜의 곡들을 가사 없이 관악·현악 편성으로 재해석해 화제를 모았다.
1988년 애시드 재즈 레이블의 첫 발매작을 낸 런던 밴드로, 장르 이름과 함께 태어나 그 정의의 출발점에 섰다. Talkin' Loud 첫 서명 아티스트로 1994년 UK 앨범 차트 8위까지 올랐다가 1997년 해체했지만, 2023년 재결성해 2026년 신작 *Acid Jazz Revenge*를 내며 30년 가까운 공백을 메웠다.
본명 Elgin Baylor Lumpkin, 탄력 있는 테너 보컬과 팀버랜드와의 협업으로 알려진 미국 R&B 가수. 부모를 모두 잃은 슬픔 속에서 아내를 향한 마음을 담아 쓴 "Differences"(2001)는 물리적 싱글 없이 빌보드 R&B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곡이 됐고, 이후 팝 스모크의 샘플링으로 재조명받았다.
보컬 Amel Larrieux와 프로듀서 Bryce Wilson으로 이뤄진 듀오로, 1995년 앨범 *Groove Theory* 단 한 장과 히트곡 "Tell Me" 하나만을 남기고 활동을 마쳤다. 소울·재즈·힙합을 뒤섞은 사운드로 네오소울이라는 이름이 정립되기 전 그 문법을 예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9년 텍사스 웨이코에서 결성된 5인조 R&B 그룹으로, 자이브 레코드와 계약해 테디 라일리가 프로듀싱한 데뷔 앨범을 냈다. 1991년 싱글 "I Like the Way (The Kissing Game)"로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는데, 이는 그룹 역사상 유일한 1위 기록으로 남았다.
호주 멜버른 출신 밴드로, 보컬 나이 팜(Nai Palm)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음악을 '원더코어'라 부르며 장르 경계를 넘나드는 사운드를 추구한다. 앤더슨 팩·켄드릭 라마·드레이크·비욘세 등 힙합/R&B 아티스트들에게 먼저 샘플링되며 주목받았고, 세 번째 앨범 *Mood Valiant*로 R&B 부문 그래미 후보에 오른 최초의 호주 팀이 됐다.
잠비아 출신으로 런던에서 자란 보컬 힐러리 음웰와와 프로듀서 빅터 레드우드-소이어가 함께 결성한 영국의 네오소울·재즈 듀오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Until You Come Back to Me"를 부른 홈 데모가 우연히 스튜디오 관계자 귀에 들어가면서 결성됐고, 1999년 데뷔 앨범 *Soul Organic*을 시작으로 네 장의 앨범을 함께 발표하며 미국 스무스 재즈 라디오와 런던 소울 공연장에서 꾸준한 팬층을 쌓았다.
장폴 모닉(Jean-Paul "Bluey" Maunick)이 이끄는 런던의 애시드 재즈 밴드로, 1981년부터 활동하며 애시드 재즈라는 장르 자체를 만든 그룹 중 하나로 꼽힌다. 대표곡 'Still a Friend of Mine'(1993)은 발매 당시 영국 차트 47위에 그쳤지만 30년 넘게 라이브에서 빠지지 않는 곡으로 남아 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데뷔 앨범 *Acoustic Soul*(2001)이 그래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수상에 실패한 뒤, 두 번째 앨범 *Voyage to India*(2002)로 최우수 R&B 앨범상 등 그래미 트로피를 처음 거머쥐었다. 어쿠스틱하고 따뜻한 네오소울 사운드로 알려져 있으며, 이 사이트는 그 앨범의 보너스 트랙이자 싱글로 발매된 적 없는 "Interested"를 다뤘다.
Jay Kay를 중심으로 1991년 애시드 재즈 레이블에 데모를 보내며 시작된 영국 밴드로, 펑크·소울·재즈 퓨전을 넘나드는 잡식성 사운드를 정체성으로 삼았다. 1996년 싱글 "Virtual Insanity"로 그래미와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를 휩쓸었고, 소속 앨범 *Travelling Without Moving*은 역대 최다 판매 펑크 앨범으로 기네스에 등재됐다.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원래는 시인이자 스포큰워드 아티스트였으나, 더 루츠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했다. 2000년 데뷔 앨범 Who Is Jill Scott?: Words and Sounds Vol. 1으로 네오소울 장르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 자리잡았고, 2026년 11년 만의 신보를 내고 투어를 재개했다.
Jodeci는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형제 두 쌍(DeVanté Swing·Mr. Dalvin, K-Ci·JoJo)으로 이뤄진 그룹으로, 가스펠 창법을 러브송에 접목한 거칠고 즉흥적인 보컬 애드리브로 90년대 R&B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었다. 데뷔 앨범 *Forever My Lady*는 발매 첫 주 빌보드 R&B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며 힙합 소울 사운드를 대중화시켰고, 35주년을 맞아 리마스터반이 재발매될 만큼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다.
본명 Joseph Thomas, 낮고 허스키한 톤으로 남성 화자의 취약한 사랑 고백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 R&B 가수. 4년간 창고에 묵혀 있다가 영화 *The Wood* 사운드트랙을 계기로 세상에 나온 "I Wanna Know"(2000)로 빌보드 핫100 4위에 오르며 커리어 최대 히트를 기록했다.
뉴 에디션 멤버로 활동하다 모타운 레이블로 이적해 솔로 커리어를 이어간 미국 R&B 가수. 1990년 셀프타이틀 앨범의 싱글 "My, My, My"로 뉴 잭 스윙 전성기에도 정통 슬로우 잼 문법을 고수해 R&B 차트 1위에 올랐다. 이 곡은 이후 캐시미어 캣·아리아나 그란데, 릴 모지 등에 의해 샘플링되며 새 세대에게도 재발견되고 있다.
그룹 조다이시 출신의 미국 형제 듀오로, 가스펠에 뿌리를 둔 하모니를 앞세운 90년대 후반 R&B 발라드를 대표한다. 조조 헤일리가 딸을 생각하며 쓴 곡을 형 K-Ci와 함께 부른 "All My Life"(1997년 앨범 *Love Always* 수록)로 빌보드 핫100 3주 연속 1위에 올랐고, 이는 듀오 커리어에서 가장 오래 정상을 지킨 싱글로 남아 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R&B 프로듀서 겸 건반주자로, B.T. 익스프레스 활동을 거쳐 1983년 자신의 이름을 건 솔로 데뷔 앨범을 냈다.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 히트곡 "You Give Good Love"를 발굴·프로듀싱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정작 자신의 곡 "Help Yourself to My Love"는 R&B 차트 28위에 그쳐 무대보다 스튜디오 쪽에서 더 크게 기억된 인물이다.
뉴욕 할렘 출신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다 1987년 데뷔 앨범 *Make It Last Forever*로 뉴 잭 스윙을 개척한 솔로 아티스트다. 데뷔 9년 만인 1996년 다섯 번째 앨범의 싱글 "Twisted"로 커리어 최대 히트를 기록하며 콧소리 섞인 관능적 창법으로 90년대 R&B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다.
2003년 히트곡 "Milkshake"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보다 4년 앞선 1999년 The Neptunes가 전곡을 프로듀싱한 데뷔작 *Kaleidoscope*로 이미 완성된 목소리를 보여준 솔로 아티스트다. 허스키한 보컬과 실험적인 프로덕션으로 이후 얼터너티브 R&B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스펠 발성과 폭발적인 애드리브가 특징인 R&B 보컬리스트로, 1998년 데뷔 앨범 *Soul of a Woman*의 리드 싱글 "Friend of Mine"으로 빌보드 R&B 차트 5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 곡으로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하며 90년대 R&B 신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1986년 데뷔한 일본의 R&B·소울 싱어송라이터로, 스티비 원더·마빈 게이 등을 롤모델 삼아 "일본 R&B·힙합의 개척자"로 불린다. 1996년 나오미 캠벨이 참여한 "LA・LA・LA LOVE SONG"으로 오리콘 1위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으며, RNB Station이 처음으로 소개한 일본 아티스트다.
오클랜드 출신의 싱어로, 그래미 11회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보컬리스트다. 재즈의 뉘앙스와 가스펠의 폭발력, 소울의 온기를 넘나들며 어느 한 장르에도 고정되지 않는 목소리로 평가받는다.
런던 남부 완즈워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로, 아버지의 레코드 컬렉션을 통해 독학으로 클래식 소울을 익힌 뒤 브릿 스쿨에서 만든 데모로 쿨템포 레이블과 계약했다. 1997년 데뷔 앨범 *Medicine 4 My Pain*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1998년 MOBO 신인상을 받았지만, 2006년 호지킨 림프종으로 31세에 세상을 떠났다.
필라델피아 소울 그룹 델포닉스 출신으로, 솔로 독립 후 1975년 앨범 My Way로 커리어를 대표하는 히트 'Love Won't Let Me Wait'을 냈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5위, R&B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팝·소울 양쪽 톱5에 든 곡으로 남았다.
모타운 소속으로 활동한 미국의 소울 싱어송라이터로, 1971년 앨범 《What's Going On》을 통해 R&B를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예술 형식으로 확장시켰다. 베트남전과 인종차별, 환경 문제 등을 조곡 구조와 현악 편곡, 겹겹이 쌓은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낸 이 앨범은 이후 R&B와 소울의 방향에 큰 영향을 남겼다.
힙합 브레이크비트 위에 소울 보컬을 얹은 스타일로 '퀸 오브 힙합 소울'이라는 칭호를 얻은 미국 R&B 가수. 1992년 데뷔 앨범 *What's the 411?*의 싱글 "Real Love"로 처음 빌보드 톱10에 진입하며 힙합 소울이라는 장르의 표준을 세웠다.
1996년 데뷔 앨범 《Maxwell's Urban Hang Suite》로 네오소울이라는 장르의 기준점을 세운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다. 70년대 소울 작곡가 Leon Ware와의 협업, Sade 멤버 Stuart Matthewman의 프로듀싱 참여 등을 통해 미국 소울의 계보와 영국식 소울의 질감을 결합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시카고 Chess Records에서 접수원으로 일하다 다섯 옥타브에 달하는 음역을 편곡자 Charles Stepney에게 발탁된 솔로 보컬리스트로, Rotary Connection을 거쳐 1970년 데뷔 앨범 *Come to My Garden*을 냈다. 발매 당시엔 차트에 오르지 못했지만 오프닝 트랙 "Les Fleurs"가 이후 반세기 넘게 샘플링과 영화음악을 통해 재발견되고 있다.
왕립음악대학 장학생 출신 피아니스트로, 클래식 화성과 재즈 코드를 UK 개러지/2-step 리듬에 결합한 프로듀서 겸 뮤지션이다. 1998년 침실 스튜디오에서 만든 "Sincere"로 UK 개러지를 에너지 중심 음악에서 질감과 그루브 중심 음악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후 Amy Winehouse, Disclosure, Stormzy 등과도 협업했다.
미국의 네오소울 싱어송라이터로, 2000년 데뷔 앨범 *Aijuswanaseing*과 데뷔 싱글 "Just Friends (Sunny)"로 이름을 알렸다. 이 곡은 Bobby Hebb의 1966년 클래식 소울 곡 "Sunny"의 멜로디를 가져와 새 가사와 프로덕션을 얹은 트랙으로, 네오소울 장르가 옛 소울을 새 목소리로 잇는 방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마리오의 "Let Me Love You"를 써준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뒤, 2006년 데뷔 앨범 In My Own Words로 가수로도 성공한 컨템포러리 R&B 아티스트다. 송라이터 출신답게 멜로디와 가사 구조가 탄탄한 것이 특징이며, 대표곡 "So Sick"은 빌보드 핫100과 UK 싱글 차트에서 동시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출신 래퍼로, 2000년대 초 힙합과 R&B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히트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 정규 앨범 Nellyville(2002)에 수록된 켈리 롤런드와의 듀엣 'Dilemma'로 빌보드 핫100 10주 1위를 기록하며 커리어 최고 히트를 남겼다.
본명 Omar Lye-Fook, 켄터베리 출신의 영국 소울 싱어송라이터로 스티비 원더가 직접 존경을 표하고 훗날 듀엣곡 "Feeling You"를 함께 작업하게 만든 인물이다. 1990년 8트랙 녹음기로 직접 완성한 데뷔 싱글 "There's Nothing Like This"는 네오소울이라는 용어가 미국에서 자리 잡기 전 영국에서 독자적으로 같은 흐름을 만들어낸 사례로 꼽히며, 이후 애시드 재즈 씬 형성에도 영향을 줬다.
프린스 비(Attrell Cordes)를 중심으로 한 미국 힙합 듀오로, 몽환적이고 부드러운 랩·보컬 스타일과 다층적인 샘플링으로 90년대 초 힙합 소울의 흐름을 이끌었다. 스판다우 발레의 'True'를 샘플링한 'Set Adrift on Memory Bliss'로 사운드스캔 도입 이후 첫 빌보드 핫100 1위를 기록했다.
비교 대상이 없다는 평을 듣는 콘트랄토를 지닌 미국 소울 가수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출연으로 토니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를 만큼 폭넓은 재능을 인정받았다.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 레코드에서 활동하며 1986년 *Living All Alone*을 냈지만 상업적 성공은 뒤늦게 찾아왔고, 1995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여섯 옥타브 음역과 휘슬 레지스터를 넘나드는 보컬로 유명한 미국 재즈-소울 싱어송라이터. 오랫동안 "흑인 여성 보컬 자리가 다 찼다"는 이유로 레이블에서 거절당하다가, 1990년 일본에서 데뷔작을 먼저 냈고 1992년 셀프타이틀 앨범으로 미국에서 정식 데뷔했다. 재즈, R&B, 팝, 가스펠, 클래식을 넘나드는 장르 불가지론적 태도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R&B·네오소울 싱어송라이터로, 아역 뮤지컬 쇼 Kids Incorporated 출신이며 19살에 브랜디의 빌보드 R&B 1위곡 "Baby"를 공동 작곡했다. 1997년 자신의 이름을 건 데뷔 앨범으로 스티비 원더에 비견되는 보컬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 성과는 크지 않았고, 비평가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숨은' 보컬리스트로 남아 있다.
뉴멕시코 출신의 미국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로, 인큐베이터 후유증으로 어릴 때 시력을 잃었지만 입술로 트럼펫 음색을 흉내내는 독자적인 창법(마우스 트럼펫)을 개발해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다. 샤키라 등의 세션 보컬로 활동하다 전설적 프로듀서 아리프 마딘에게 발탁돼 2005년 메이저 데뷔 앨범 *State of Mind*를 냈으며, 이후 그래미 재즈보컬 부문 후보에도 두 차례 올랐다.
필라델피아 출신의 미국 싱어로, 2001년 데뷔작 *How I Do*에서 소울·록·포스트펑크·네오소울을 넘나드는 장르 혼합 사운드를 선보여 Rolling Stone 올해의 앨범 4위에 올랐지만 상업 성적은 저조했다. 레이블 통폐합으로 두 번째 앨범이 서랍에 갇혔고, 2022년에는 오리지널 마스터테이프 95%가 손상돼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녹음해야 했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펑크(funk)·R&B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로, 리듬앤블루스와 펑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루브 중심 사운드가 특징이다. 1981년 앨범 Street Songs 수록곡 "Give It to Me Baby"는 빌보드 R&B 차트 5주 연속 1위와 댄스 클럽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비브라폰 연주자이자 밴드리더로, 재즈·펑크·소울을 넘나드는 음악으로 "네오소울의 대부"라 불린다. 자신의 앙상블 Roy Ayers Ubiquity로 활동하며 1972년 발표한 "We Live in Brooklyn, Baby"는 모스 데프 등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반세기 가까이 샘플링된 곡으로, 2025년 타계 이후 오리지널 마스터 테이프 재발매를 통해 다시 조명받았다.
본명 Shanice Lorraine Wilson, 피츠버그 출신으로 아역 시절 *Star Search* 우승과 *Kids Incorporated*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뒤 솔로 가수로 전향했다. 1991년 모타운에서 낸 두 번째 앨범 *Inner Child*의 리드 싱글 "I Love Your Smile"로 아역 이미지를 벗어나 성숙한 보컬리스트로 재평가받았다.
코코(Coko), 태미(Taj), 르릴(Lelee)로 구성된 90년대 미국 R&B 걸그룹. 데뷔 앨범 *It's About Time*(1992)의 세 번째 싱글 "Weak"으로 1993년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랐으며, 이 곡은 여전히 그룹의 대표곡이자 90년대 R&B를 대표하는 트랙으로 꼽힌다.
캐나다 출신 R&B 싱어로, 1998년 영화 《Speechless》 사운드트랙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3년 발표한 어쿠스틱 기반 발라드 'Officially Missing You'가 2012년 한국 듀오 Geeks와 소유의 리메이크로 다시 주목받으며 한국에서도 널리 사랑받았다.
뉴올리언스 가스펠 집안 출신의 미국 네오소울 싱어송라이터로, 2004년 데뷔작 *Complex Simplicity*가 평단으로부터 "크레이지섹시쿨 이후 최고의 R&B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았지만 힙합 중심 레이블 TVT의 미숙한 마케팅으로 상업적으로는 저조했다. Ari Lennox 등 후대 아티스트에게 참고 템플릿이 됐고, 2025년 20주년을 맞아 리이매진 EP와 매진 투어로 재조명받았다.
시카고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포크·재즈·소울을 넘나드는 음악을 했으나 1983년 돌연 음악을 접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살았다. 그가 은퇴 직전 남긴 싱글 "I Don't Want to See Myself (Without You)"이 영국 클럽 신에서 컬렉터들의 전설이 되며 애시드 재즈 레이블을 통해 재발매됐고, 이를 계기로 1990년대 음악계에 복귀해 베스 오턴, 매시브 어택 등과 협업했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잭슨 형제들로 구성된 모타운 소속 그룹으로, 데뷔 이후 첫 네 싱글을 모두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린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1970년 발표한 "I'll Be There"는 열한 살 마이클의 애드리브가 그대로 남은 채 완성돼, 모타운 역대 최다 판매 싱글에 오를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뉴욕 롱아일랜드 출신 David "Sincere" McRae와 Marvin "Money Harm" Moore-Hough로 이뤄진 2인조 듀오로, Wyclef Jean·Carlos Santana와 함께 빌보드 1위 곡 "Maria Maria"를 공동 작곡한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정작 자신들의 데뷔 앨범 *Ghetto & Blues*는 2001년 발매가 예정됐지만 끝내 정식 발매되지 못하고 유출본으로만 남았다.
티부치(T-Boz), 레프트아이(Left Eye), 칠리(Chilli)로 구성된 애틀랜타 출신 R&B 그룹으로, 1994년 앨범 *CrazySexyCool*의 리드 싱글 "Creep"으로 빌보드 핫100 첫 1위를 기록했다. 불편한 주제도 정면으로 다루는 가사와 멤버 간 이견까지 곡 안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90년대 R&B를 대표하는 그룹이 됐다.
낮고 짙은 콘트랄토 음색으로 유명한 미국 R&B 싱어로, 《부메랑》 사운드트랙 수록곡 'Love Shoulda Brought You Home'이 그녀의 데뷔 솔로 싱글이었다. 이 곡을 시작으로 90년대를 대표하는 R&B 디바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버지니아주 피터스버그 출신의 미국 R&B 솔로 아티스트(본명 트레메인 네버슨)로, 프로듀서 트로이 테일러에게 발탁돼 애틀랜틱 레코드와 계약했다. 옛 소울 샘플과 힙합 피처링을 결합한 데뷔 싱글 "Gotta Make It"과 동명의 데뷔 앨범(2005)으로 데뷔했으며, 2026년 현재까지도 어셴티·로 제임스 등과 함께 투어를 이어가는 20년차 활동 아티스트다.
1994년 데뷔한 미국의 R&B 솔로 아티스트로,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다듬은 "U Remind Me"로 2001년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오르며 이듬해 커리어 첫 그래미(최우수 남성 R&B 보컬 퍼포먼스상)를 받았다. 랩에 가까운 리듬감과 부드러운 팔세토를 오가는 보컬이 특징이며, 2000년대 컨템포러리 R&B를 대표하는 남성 보컬리스트로 꼽힌다.
애틀랜타에서 Dionne Farris와 Rahsaan Patterson 등에게 곡을 써주던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다, 2004년 Dallas Austin의 눈에 띄어 자신의 이름을 건 데뷔 앨범을 냈다. 수록곡 'Dust'가 그래미 후보에 오를 만큼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상업적 성과는 크지 않았고 세 번째 앨범은 거의 10년 뒤에야 발매됐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음역으로 평론가들에게 종종 Chaka Khan과 비교됐던 소울 가수로, 데뷔 전에는 Chaka Khan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의 백업 싱어로 활동했다. 1989년 곡 'Congratulations'는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 유일하게 빌보드 Hot 100에 진입한 곡으로 남았다.
본명 제이슨 추(Jason Chue)인 영국의 UK 개러지·2-step 프로듀서로, Soul II Soul 스튜디오에서 쌓은 R&B 화성 감각을 개러지 사운드에 접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 보컬리스트 Lain과 함께 완성한 "Battle"은 2019년 가디언이 선정한 'UK 개러지 역대 최고의 곡' 1위에 오른 대표작이다.
1990년 런던에서 카를린 앤더슨(제임스 브라운의 대녀)을 중심으로 마르코 넬슨, 페미 윌리엄스가 결성한 애시드 재즈 밴드. 1991년 싱글 "Apparently Nothin'"과 앨범 *Road to Freedom*으로 애시드 재즈와 네오소울 양쪽의 청사진으로 꼽혔지만, 앨범 한 장을 끝으로 해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