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ysa Leak — Quiet Fire: 그래미 후보에 오른 목소리를, 미국은 아직도 인코그니토 시절로만 기억한다
1992년 인코그니토의 목소리로 애시드 재즈 히트곡을 만들었던 마이사 리크는 이후 솔로로 20년 넘게 활동하며 2014년 그래미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미국 대중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숨은 명곡 & 저평가된 보컬

1992년 인코그니토의 목소리로 애시드 재즈 히트곡을 만들었던 마이사 리크는 이후 솔로로 20년 넘게 활동하며 2014년 그래미 후보에까지 올랐다. 그런데도 미국 대중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서른일곱 살 전직 석공이 전 재산을 털어 자비로 만든 데뷔 앨범이 있다. BBC의 질스 피터슨은 이 앨범을 '올해의 앨범' 후보로 꼽았고 Jazz FM은 그를 '올해의 소울 아티스트'로 불렀지만, 정작 고국 미국에서는 빌보드 차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조지아 출신 세션 가수 도리스 커리는 1969년 프로듀서 스웜프 독을 만나 "도리스 듀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듬해 낸 "To the Other Woman"은 빌보드 R&B 싱글 차트 7위까지 올랐지만, 소속 레이블 캐년 레코드가 그해 파산하며 로열티 한 푼 받지 못했다. 훗날 평론가들이 데뷔 앨범을 "역대 최고의 딥 소울 음반" 중 하나로 꼽았을 때도, 정작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억만장자 상속녀 도리스 듀크가 먼저 나왔다.

필라델피아 딥 소울 가수 하워드 테이트는 1967년 프로듀서 제리 라고보이와 함께 "Get It While You Can"을 녹음했지만 싱글로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4년 뒤 재니스 조플린이 이 곡을 커버해 유작 앨범 *Pearl*에 실으면서 곡은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원곡을 부른 테이트의 이름은 대중에게 남지 않았다.

걸프전에 파병됐던 공수부대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앤서니 데이비드는 인디아 아리의 그래미 후보작 데뷔 앨범에 곡을 써주며 이름을 알렸다. 정작 그녀와 함께 부른 자신의 대표곡 "Words"는 2009년 그래미 후보에 올랐지만, 빌보드 R&B 싱글 차트에서는 53위에 그쳤다.

디트로이트의 무명 가수가 자동차 트렁크에서 팔던 데모 테이프가 슬럼 빌리지와 제이 딜라의 귀에 들어가며 시작된 커리어. 정작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칸예 웨스트의 "Flashing Lights"와 "Power"였고, 자신의 대표곡 "Find a Way"는 평단의 극찬에도 빌보드 핫100 93위에 그쳤다.

오티스 레딩, 윌슨 피켓과 나란히 놓아도 밀리지 않는 목소리였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정작 그의 이름은 소울 마니아들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못했다. 아레사 프랭클린부터 영화 <커미트먼츠>까지 숱하게 다시 불린 원곡의 주인, 제임스 카를 소개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무명 가수가 레이블 붕괴로 4년을 기다려 낸 데뷔작에는 칸예 웨스트, 와이클레프 진, 라파엘 사딕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평단은 그의 목소리를 아레사 프랭클린과 에타 제임스에 견줬지만, 앨범은 빌보드 R&B 앨범차트 42위에 그쳤다.

클리블랜드 출신 콘야 도스는 자신의 독립 레이블을 세워 2002년부터 아홉 장의 앨범을 냈고, USA 투데이는 그를 "꿀 같은 목소리의 신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2008년 커리어 최고 히트곡 "What I'd Do"조차 빌보드 R&B 싱글 차트 79위에 그쳤다 — 평단은 알아봤지만 대중은 끝내 알지 못한 목소리다.

1969년부터 노래해온 소울 싱어 리 필즈는 샤론 존스의 첫 세션을 열어주고 찰스 브래들리의 첫 투어에 그를 데려간 인물이지만, 정작 두 사람이 소울 리바이벌의 스타가 되는 동안 자신은 오랫동안 무명에 머물렀다. 43년 만에 나온 대표작 "Faithful Man"이 그 간극을 보여준다.

히브루 오순절교회에서 자란 도니는 같은 교회 출신 친척 마빈 게이를 생전에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2002년 데뷔 앨범 The Colored Section은 게이와 스티비 원더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 그럼에도 빌보드 200에는 오르지 못했고, R&B 앨범차트에서도 31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1994년 워너브라더스가 앨범을 통째로 폐기하고 계약을 끊었던 신인이, 이후 자기 레이블 하나로 20년 넘게 활동하며 그래미 후보에 두 번 오르고 '독립 소울의 왕'이라 불리기까지 이르렀다.

니콜 키드먼이 영화 "물랑 루즈!"에서 부르며 전 세계가 다시 알게 된 이 곡의 원곡자는, 영국·벨기에·네덜란드에서는 1위급 히트를 냈지만 정작 고국 미국에서는 솔로로 빌보드 핫100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도니 해서웨이의 딸이자 다섯 번의 그래미를 받은 보컬리스트. 2008년 그래미 후보에 오른 이 곡은 정작 R&B 싱글 차트 105위에 그쳤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아니타 베이커, 로드 스튜어트 등 수많은 앨범에 목소리를 얹어온 세션 보컬 필 페리는, 1991년 아레사 프랭클린 커버곡 'Call Me'로 R&B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지금도 대중에게 낯설다.

자메이카 이민자 가정의 딸로 태어나 가스펠 성가대에서 노래를 배운 베벌리 나이트는, 1995년 데뷔 싱글이 처음엔 차트 50위로 조용히 묻힐 뻔했다. 새 뮤직비디오를 달고 재발매한 끝에야 첫 톱40 진입에 성공했지만, 평단이 극찬한 데뷔 앨범 자체는 영국 앨범차트 145위에 머물렀다.

2001년 데뷔작부터 평단의 호평을 받아온 시카고 소울 싱어송라이터. 2002년 "Guess What"으로 리드 아티스트로서 첫 1위(어덜트 R&B 차트)를 찍었지만, 2년 뒤 카니예 웨스트의 "All Falls Down"에서 로린 힐 대신 후렴을 대신 불러준 것으로 훨씬 더 널리 알려졌다. USA투데이조차 "부당하게도"라는 표현을 썼다.

디온 워윅의 동생이자 시시 휴스턴의 조카, 휘트니 휴스턴의 사촌. 디디 워윅을 소개하는 수식어는 늘 가족의 이름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정작 그가 세션에서 500곡 넘게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를 채워주고, 자기 히트곡마저 두 번이나 더 유명한 커버에 내준 끝에 남긴 건 "Foolish Fool" 단 한 곡의 흔적이었다.

브루클린 출신 세션 보컬 리사 피셔는 1991년 데뷔 앨범 [So Intense]의 타이틀곡급 히트 "How Can I Ease the Pain"으로 빌보드 R&B 1위에 오르고, 자신이 한때 백보컬로 섰던 패티 라벨과 그래미를 동률로 나눠 가졌다. 그러나 이 앨범은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작으로 남았다 — 그는 다시 롤링 스톤스의 백보컬 자리로 돌아가 26년을 보냈다.

필라델피아 네오소울 신에서 더 루츠와 제이지의 눈에 띄어 데뷔한 재규어 라이트의 2002년 앨범은 AllMusic·롤링스톤·가디언이 나란히 호평하고 AP가 그해 최고작으로 꼽았다. 코카콜라 광고에까지 흘렀던 타이틀곡 「The What If's」는 그럼에도 상업적으로는 조용히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