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rl Anderson — Buttercup: 브로드웨이의 유다가 되살려낸, 스티비 원더의 미발표곡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유다 역으로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던 배우가, 잭슨 5조차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스티비 원더의 곡을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에서 되살려낸 사연.
숨은 명곡 & 저평가된 보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유다 역으로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던 배우가, 잭슨 5조차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스티비 원더의 곡을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에서 되살려낸 사연.

아이작 헤이즈풍 낭독으로 문을 여는 8분짜리 커버로 라디오를 사로잡았던 마지 조셉은, 애틀랜틱에서 "제2의 아레사 프랭클린"으로 키워졌지만 로버타 플랙과 프랭클린에게 밀려 정작 홍보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그의 집과 가수 시절 기록물을 모두 삼킨 뒤, 그는 음악계를 떠나 애틀랜타에서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뉴저지 가스펠 집안에서 자란 린다 존스는 세 차례 레이블 계약 실패 끝에 조지 커의 눈에 띄어 1967년 "Hypnotized"로 빌보드 R&B 4위에 올랐다. 평론가들은 그의 폭발적인 창법을 아레사 프랭클린, 글래디스 나이트에 견줬지만, 하룻밤에 서너 곡씩 여러 무대를 도는 강행군 끝에 1972년 아폴로 극장 공연 사이 쉬던 중 당뇨 합병증으로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1982년 무명 인디 레이블에서 나온 뒤 완전히 묻혔던 싱글이, 8년 뒤 영국 컬렉터들 사이에서 웃돈이 붙는 희귀반이 됐다. 애시드 재즈 창립자 에디 필러는 이 한 장의 레코드에 집착해 그를 수소문했고, 결국 대학교 전산실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테리 캘리어를 찾아냈다.

클리블랜드 교회 피아노에서 시작해 프린스와 차카 칸, 브랜포드 마살리스와 함께 무대에 섰던 프랭크 맥콤은 메이저 레이블과 두 번 계약했지만 두 번 다 앨범이 조용히 묻혔다. 데뷔 초 모타운 산하 모재즈(MoJazz)에서 녹음한 앨범 두 장은 아예 발매되지 못한 채, 훗날 팬들 사이에서 암시장 가격으로 거래됐다.

줄리아드 음악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소프라노가 재즈 피아니스트 더그 칸을 만나 밴드 보컬로 방향을 틀었다. 1978년 낸 "Don't Let It Go to Your Head"는 빌보드 R&B 차트 54위에 그쳤지만, 14년 뒤 Brand New Heavies의 커버가 영국 댄스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Brand Nubian이 샘플링하면서 원곡보다 훨씬 더 유명해졌다.

가스펠 명가에서 태어나 위탁가정을 전전한 소녀가, 6년간 다른 그룹의 보컬로 무명 시절을 보냈다. 그가 서른 문턱에 겨우 낸 데뷔 싱글은 원래 휘트니 휴스턴에게 제안됐다가 거절당한 곡이었다. R&B 차트 5위까지 오른 이 노래로 미키 하워드는 데뷔했지만, 앨범은 빌보드 200에서 171위에 그쳤다.

하우스 뮤직 백보컬로 시작해 머라이어 캐리, 쿨 앤 더 갱, 빌리 오션의 세션 싱어로 커리어를 쌓은 윌 다우닝은 1988년 존 콜트레인의 영성 재즈 명반 "A Love Supreme"에 직접 가사를 붙여 데뷔했다. 반응은 미국보다 영국에서 먼저 왔다. 이후 30년 넘게 22장의 앨범을 내며 "소피스티케이티드 소울의 황태자"로 불렸지만, 빌보드 Hot 100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재즈펑크 명곡 "Forget Me Nots"로 그래미 후보에 오른 지 10여 년 뒤, 패트리스 러션은 새 앨범을 레이블에 넘겼다. 돌아온 답은 "우리가 원한 건 패트리스 러션다운 레코드였다"는 거절이었다. 앨범은 다른 레이블을 통해서만 세상에 나왔고, 그는 훗날 그래미 시상식 최초의 여성 음악감독이 됐다.

DJ Shadow와 Gang Starr부터 Drake까지, 힙합 프로듀서들은 수십 년째 이 목소리를 잘라 썼다. 정작 1969년 원곡 "Woman of the Ghetto"는 미국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가수"로 불린 목소리의 이야기.

1972년, 머슬숄스에서 녹음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레이블은 항공권을 도로 반납하라고 통보했다. 선공개 싱글 "Your Turn to Cry"가 차트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Child of the Seventies는 그렇게 30년 가까이 창고에 묻혔다.
라산 패터슨은 브랜디의 "Baby"와 테빈 캠벨의 "Back to the World"를 쓴 송라이터였다. 정작 자신의 목소리로 부른 "Where You Are"는 1997년 R&B 차트 53위에 그쳤지만, 동료 프로듀서들은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저평가된 보컬리스트"라 부른다.

1985년 르네 앤 앤젤라는 "I'll Be Good"으로 R&B 차트 4위에 올랐지만, 이듬해 듀오는 갈라섰다. 12년 뒤 폭시 브라운과 제이지가 이 곡을 샘플링한 "I'll Be"로 빌보드 7위에 오르며, 멜로디는 원곡보다 더 유명해졌다.
프린스가 1981년 앨범 수록곡으로 남겨둔 "Do Me, Baby"를 1986년 여성의 시점으로 다시 부른 멜리사 모건은 이 곡으로 R&B 차트 정상에 3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그의 유일한 빌보드 Hot 100 진입곡으로 남아있다.

19살에 브랜디의 빌보드 R&B 1위곡 "Baby"를 공동 작곡한 소년은 3년 뒤 자신의 데뷔 앨범을 냈다. 스티비 원더에 비견되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그 앨범의 싱글은 R&B 차트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할렘의 위탁가정에서 자라 B.T. 익스프레스의 건반주자로 음악을 시작한 카시프는, 로버타 플랙 쪽에서 퇴짜맞은 데모 한 곡을 자신의 뉴저지 스튜디오로 불러들여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로 완성시켰다. 그렇게 나온 "You Give Good Love"는 휴스턴의 데뷔 앨범을 연 첫 R&B 1위곡이 됐지만, 같은 해 자신의 이름으로 낸 "Help Yourself to My Love"는 미국 R&B 차트 28위에 그쳤다.

제임스 브라운 레뷰 시절 남긴 싱글이 훗날 "I Got You (I Feel Good)"의 원형이 됐지만, 이본 페어는 모타운에서 8년을 백업 보컬로 보낸 뒤에야 첫 정규 앨범을 얻었다. 그렇게 나온 "It Should Have Been Me"는 미국에서는 외면받고 영국에서만 5위에 오른 그의 유일한 히트로 남았다.

뉴욕타임스가 "스티비 원더와 바비 맥퍼린, 호세 펠리치아노의 3중 퓨전"이라 묘사한 목소리의 주인공. 인큐베이터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고 자란 그는 입술로 트럼펫 음색을 흉내내는 독자적 기법을 익혔고, 아레사 프랭클린과 노라 존스를 만든 프로듀서 아리프 마딘이 커리어를 통틀어 유일하게 직접 계약한 아티스트가 됐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를 가진 이 가수는 평론가들에게 종종 Chaka Khan과 비교됐다. 정작 데뷔 전 몇 년간은 Chaka Khan을 비롯해 Gladys Knight, Sting, Anita Baker의 백업 싱어로 무대에 섰다. 1989년 발표한 "Congratulations"는 그의 유일한 빌보드 Hot 100 진입곡이자 지금까지 남은 대표곡이다.
1984년 지미 잼과 테리 루이스가 프로듀싱한 이 곡으로 셰럴은 R&B 톱10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2년 뒤 로버트 팔머가 커버해 빌보드 2위까지 오르면서, 원곡을 부른 그녀의 이름은 뒤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