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y J. Blige — Real Love: 힙합과 소울을 하나로 묶어, '퀸 오브 힙합 소울'이 태어나다
오디오 투의 힙합 브레이크비트 위에 소울 보컬을 얹은 이 곡 하나로, 열여덟 살 신인은 '퀸 오브 힙합 소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매리 제이 블라이즈의 이야기다.
지금까지 쌓인 모든 글 — 최신순으로 전부 둘러보기 (5/7페이지)

오디오 투의 힙합 브레이크비트 위에 소울 보컬을 얹은 이 곡 하나로, 열여덟 살 신인은 '퀸 오브 힙합 소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매리 제이 블라이즈의 이야기다.

뉴 잭 스윙 전성기에 정통 슬로우 잼으로 승부한 조니 길의 발라드. 케니 지의 색소폰과 애프터7의 코러스를 등에 업고 R&B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은, 25년 뒤 캐시미어 캣·아리아나 그란데와 릴 모지의 샘플링으로 새 세대에게도 다시 발견되고 있다.

이 곡은 Bofill이 부르기 전 이미 네 명의 가수를 거쳤다 — Martha Reeves는 B면에 묻었고, Linda Lewis는 타이틀곡으로 냈지만 큰 반향은 없었고, Marlena Shaw와 Roberta Flack까지 녹음했다. 정작 이 곡을 대표곡으로 만든 건 1978년, 재즈 레이블에서 데뷔한 무명 신인이었다.

레코드사들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흑인 여성 보컬 자리가 이미 찼다"는 편지를 보냈다. 1990년 데뷔작은 일본에서만 발매됐고, 미국에는 5년 뒤에야 상륙했다. 그 사이 어렵게 세상에 나온 1992년 앨범의 "With Open Arms"에는 17초짜리 롱톤과 여섯 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아버지의 레코드 컬렉션에서 소울을 독학한 런던 소년이, 보이밴드와 브릿팝이 차트를 지배하던 해에 데뷔 싱글을 냈다. 처음엔 45위로 조용히 끝났지만, 1년 뒤 리믹스가 이 노래를 17위까지 다시 불러세웠다.

어머니를 앗아간 유방암을 그대로 진단받은 보컬이, 재건 수술 대신 황금빛 유방 모형을 택했다. 같은 시기 완성한 앨범이 5년 만에 금색 바이닐로 돌아온 지금, 그 사이의 이야기를 짚는다.

13살에 만난 두 소년이 우연히 만난 프로듀서 덕에 2주 만에 산타나의 "Maria Maria"를 함께 썼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데뷔 앨범은 끝내 정식 발매되지 못했다. "Black Rose"는 그 앨범 안에 묻힌 조(Joe)가 써준 발라드다.

아홉 살에 엘라 피츠제럴드와 광고를 찍고, 열한 살에 스타서치에서 우승했던 아이가 있었다. 데뷔작은 나이 때문에 묻혔지만, 두 번째 앨범 타이틀 그대로 '내면의 아이'를 벗어던지고 재발견됐다.

뉴욕증권거래소 객장에서 일하던 남자가 뉴 잭 스윙의 개척자가 됐다. 데뷔 9년 뒤 낸 다섯 번째 앨범에서, 그는 커리어 최대 히트곡을 만났다.

텍사스 웨이코의 10대 다섯 명이 뉴 재즈 스윙의 거장 테디 라일리를 만나 만든 곡이 빌보드 핫100 정상까지 올랐다. 그룹의 처음이자 마지막 1위였다.

'그냥 친구 사이'라는 제목의 이 데뷔 싱글은, 사실 1966년 Bobby Hebb의 클래식 소울 곡 위에 지어졌다. 30여 년의 시차를 건너 완성된 네오소울의 입구.

2Pac의 대표곡 두 곡에 목소리를 남긴 그가, 정작 자기 그룹의 최대 히트곡 "No Diggity"가 나오기 전에 팀을 떠났다. 그 뒤 홀로 완성한 곡이 "One Woman Man"이다.

"No Diggity"를 낳은 앨범 안에는 싱글이 된 적 없는 트랙이 하나 더 있었다. 27년 뒤, 이 곡을 다시 꺼낸 건 차트가 아니라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이었다.

찰리 윌슨을 염두에 두고 썼던 곡이 새크라멘토를 떠돌다 SWV에게 닿았다. 정작 리드 싱어 코코는 처음엔 이 노래를 부르기 싫어했다.

7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도 그래미에서 빈손으로 돌아섰던 가수가, 두 번째 앨범으로 마침내 트로피를 들었다. 그 앨범 보너스 트랙 중 하나인 "Interested"는 싱글이 된 적도, 크게 조명받은 적도 없다.

제임스 브라운 레뷰의 리드 싱어를 어머니로, 페이머스 플레임스의 원년 멤버를 계부로 둔 여성이 정작 자란 곳은 휴스턴의 오순절 교회였다. 그 목소리가 1991년 런던에서 애시드 재즈와 네오소울 양쪽의 청사진이 된 곡의 이야기.

Dionne Farris와 Rahsaan Patterson에게 곡을 써주던 무명 작곡가가 2004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앨범을 냈다. 평단은 열광했고 대표곡은 그래미 후보에도 올랐지만, 앨범은 빌보드 R&B 차트 38위에 그쳤다. 그리고 세 번째 앨범은 거의 10년 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카운트 베이시와 함께 노래한 재즈 보컬리스트의 딸이 힙합 프로듀서 Dred Scott을 만나 완성한 1997년 데뷔작. 일부 소개글은 이를 "최초의 네오소울 레코드"라 부르지만, 정작 그 이름을 대표하게 된 건 에리카 바두와 D'Angelo였다.

1993년 발매 당시 영국 차트 47위에 그친 이 곡은, 그럼에도 30년 넘게 애시드 재즈를 대표하는 곡으로 남아있다. 두 목소리가 주고받는 짧은 재회의 순간이 왜 이렇게 오래 남았을까.

어릴 때 우연히 듣고 완전히 반해버린 영화음악이 있다. 에디 머피 주연 영화 <부메랑>의 사운드트랙, 그 안의 네 곡을 각각 다른 위스키와 맞춰봤다. 달콤한 버번부터 스파이시한 라이까지, 한 장의 앨범이 한 잔의 시음 코스가 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