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mes Taylor Quartet — Blow-Up: '애시드 재즈'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 이미 그 사운드였다
허비 행콕의 영화음악을 오르간으로 다시 쓴 데뷔 싱글. 이 곡을 실은 레이블이 훗날 애시드 재즈 레코드가 됐고, 이 밴드를 매니징하던 사람이 그 장르 이름을 농담 삼아 지어냈다.
네오소울 / 애시드 재즈 / 투스텝 (3/4페이지)

허비 행콕의 영화음악을 오르간으로 다시 쓴 데뷔 싱글. 이 곡을 실은 레이블이 훗날 애시드 재즈 레코드가 됐고, 이 밴드를 매니징하던 사람이 그 장르 이름을 농담 삼아 지어냈다.

돈이 필요해 손을 벌릴 때마다 아버지가 되풀이하던 말을, 앤지 스톤은 그대로 데뷔 싱글의 제목으로 가져왔다. 글래디스 나이트를 샘플링한 이 곡이 나온 지 이번 주로 27년, 그리고 그 목소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넘었다.

짐가방을 든 여자의 은유로 감정의 무게를 그려낸 곡은 에리카 바두의 첫 빌보드 톱10 히트가 됐다. 발매 25주년을 맞은 지금, 앨범은 오리지널 프로덕션 테이프에서 새로 리마스터되어 돌아왔고 바두는 그 전곡을 들고 다시 투어를 돈다.
1985년, 드럼머신 위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얹은 런던 삼인조가 빌보드 R&B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영국 밴드로는 최초의 기록이었다. 올해로 41주년을 맞은 이 곡의 주인공들은, 지난 8월 초 런던 근교 무대에 다시 섰다.
안드레 해리스와 마샤 앰브로시우스가 로널드 아이슬리에게 주려고 쓴 곡은 퇴짜를 맞았다. 대신 자신들이 부른 노래가 플로트리의 유일한 빌보드 히트가 됐고, 두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뭉친 전국 투어의 이름이 됐다.
다른 가수의 솔로곡을 리믹스해 화이트 라벨 바이닐로 몰래 퍼뜨린 노래가, 같은 듀오의 다음 싱글 성공에 힘입어 뒤늦게 영국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처음 세상에 나온 지 27년이 됐다.
1973년 미국 최초로 아폴로 극장을 헤드라인한 영국 밴드는, 정작 고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채 1974년 해체했다. 그 그루브는 이후 40년 넘게 힙합 세대의 턴테이블 위에서 몰래 살아남았다.

해적 라디오에서 시작된 곡이 이름을 두 번 바꾸고서야 UK 개러지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정작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무단 샘플링으로 소송당할 뻔한 재즈-힙합 듀오가, 오히려 블루노트 전체 카탈로그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계약을 받아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허비 행콕의 곡은 빌보드 9위까지 올랐다.

R&B 발라드로 쓰였다가 서랍에 묻힌 곡이, 프로듀서 한 명의 손을 거쳐 UK 개러지의 대표곡이 됐다. 25년 뒤 다시 커버되고, 다시 바이닐로 눌리는 곡의 이야기.

체스 레코드에서 시작해 캐뎃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소울 가수가, 어느 날 음악을 접고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됐다. 20년 가까운 공백을 끝낸 건 애시드 재즈 설립자가 끝까지 추적한 낡은 7인치 한 장이었다.

소울 밴드가 우탱 클랜의 곡을 가사 없이, 관악기와 현악기만으로 다시 연주했다. RZA가 직접 스튜디오에 찾아와 듣고 갔던 이 프로젝트가, 2026년 새 패키징의 바이닐로 다시 발매된다.

"네오소울의 대부"라 불린 로이 에이어스가 세상을 뜬 지 1년 4개월. 2026년 7월, 그가 1972년에 남긴 앨범이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 테이프로 처음 돌아온다. 힙합이 반세기 동안 반복해서 빌려 쓴 브루클린 찬가의 이야기.

히트 싱글을 부른 목소리를 통째로 빼고, 힙합 래퍼 열 명에게 앨범 전체를 내준 실험작이 있었다. 영국에서 10년 넘게 절판됐던 그 음반이 2026년 화이트 바이닐로 돌아온다.

원래는 인스트루멘탈로 끝날 뻔했던 곡이 보컬 한 줄로 완전히 달라졌다. 2019년 가디언이 'UK 개러지 역대 최고의 곡' 1위로 꼽은 트랙의 뒷이야기.

아레사 프랭클린이 부른 스티비 원더 원작을 리메이크한 홈 데모 한 곡이, 우연히 런던의 한 스튜디오 주인 귀에 들어가면서 프로듀서 빅터 레드우드-소이어와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결성된 Hil St Soul은 이 곡의 어쿠스틱 버전을 데뷔 앨범에 실었다.

"그 곡이 몽환적이고 트랜스 같아서 늘 좋아했다" — 프린스 비는 스판다우 발레의 80년대 신스팝 발라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게 완성된 곡은 사운드스캔 도입 이후 첫 빌보드 핫100 1위곡이 됐다.
필라델피아 오픈 마이크 무대의 시인을 더 루츠가 발견해 스튜디오로 데려갔고, 그렇게 나온 데뷔 앨범이 네오소울의 레퍼런스가 됐다. 11년 만에 신보를 내고 이달 초 투어를 시작한 지금, 그 출발점이었던 노래를 다시 걷는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아버지의 레코드 컬렉션에서 소울을 독학한 런던 소년이, 보이밴드와 브릿팝이 차트를 지배하던 해에 데뷔 싱글을 냈다. 처음엔 45위로 조용히 끝났지만, 1년 뒤 리믹스가 이 노래를 17위까지 다시 불러세웠다.

어머니를 앗아간 유방암을 그대로 진단받은 보컬이, 재건 수술 대신 황금빛 유방 모형을 택했다. 같은 시기 완성한 앨범이 5년 만에 금색 바이닐로 돌아온 지금, 그 사이의 이야기를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