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Johnnie Walker × Isaac Hayes — Walk On By: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름, 걸어서 떠나는 노래
들어가며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치고 이렇게 노골적으로 "걷는다"는 동사를 내세우는 이름은 드물다. 조니워커는 1908년부터 성큼성큼 걷는 남자를 병에 새겼고, 1999년부터는 "Keep Walking(계속 걸어라)"이라는 문장을 전 세계 광고에 걸었다.
노래에도 "걷는다"는 동사가 제목부터 박혀 있다. "Walk On By" — 사랑이 끝난 사람 곁을 그냥 지나쳐 걸어가 달라고 부탁하는 노래다. 1964년 디온 워윅이 부른 3분짜리 팝 발라드였던 이 곡을, 1969년 아이작 헤이즈는 12분짜리 소울 서사시로 늘려놓았다.
같은 "걷기"를 말하지만 방향이 다르다. 하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걸음이고, 하나는 아픈 사람 곁을 피해서 걷는 걸음이다.
조니워커라는 이름
182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족 농장까지 처분해야 했던 열다섯 살 존 워커(John Walker)는 스코틀랜드 킬마녹에서 작은 식료품점을 열었다. 당시 식료품점은 차·럼과 함께 위스키를 팔았는데, 워커는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자신의 방식대로 섞어 파는 데 재능을 보였다.
아들 알렉산더 워커 대에 사업은 본격적인 블렌딩 하우스로 자리 잡았고, 손자 대에 와서 지금의 브랜드 정체성이 완성됐다. 1906년 화이트 라벨·레드 라벨·블랙 라벨이 나란히 출시됐는데, 그중 블랙 라벨은 12년 숙성 원액만 써서 더 진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낸 상위 라인업이었다.
1908년, 알렉산더의 아들은 삽화가 톰 브라운(Tom Browne)에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신사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다. 이렇게 태어난 "스트라이딩 맨(Striding Man)"과 "Born 1820 – still going strong(1820년생, 여전히 건재하다)"이라는 문구는 세계 최초의 브랜드 로고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캐릭터는 1999년 "Keep Walking" 캠페인으로 다시 전면에 나서며, 브랜드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됐다.
블랙 라벨은 스페이사이드·하이랜드·아일라 등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가져온 원액을 섞어 만든다. 어느 한 지역이 특별히 두드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이 이 블렌드의 핵심이다.
사진: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테이스팅 노트
조니워커 블랙 라벨은 40% 도수로 병입된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향은 견과류와 바닐라, 은은한 피트 스모크. 입에 머금으면 짙은 과일향과 스파이스, 달콤한 바닐라 토피가 부드러운 연기와 함께 어우러진다.
실제로 마셔보면 첫 향에서 건포도와 구운 사과, 넛메그가 올라오고, 입에서는 버터스카치 캔디 같은 단맛과 오렌지 블라섬 꿀이 느껴지며, 그 아래로 은은한 아일라 피트가 깔린다. 피니시는 과하지 않은 연기와 함께 견과류의 고소함, 옅은 후추가 오래 남는다.
Walk On By라는 곡
"Walk On By"는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이 곡을, 할 데이비드(Hal David)가 가사를 쓴 곡이다. 두 사람은 1963년 말 뉴욕 벨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디온 워윅과 이 곡을 녹음했다. 원래는 "Any Old Time of Day"의 B면으로 조용히 묻힐 뻔했지만, 뉴욕의 한 라디오 DJ가 청취자 투표를 거쳐 B면을 틀어주면서 역주행에 성공했다. 1964년 4월 발매된 이 싱글은 빌보드 핫100 6위, 캐시박스 R&B 차트 1위에 올랐다.
곡은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멈춰서 이야기 나누는 대신 그냥 지나쳐 걸어가 달라고 부탁하는 화자의 마음을 그린다.
화자는 옛 연인에게,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멈추지 말고 그냥 지나쳐 걸어가 달라고 부탁한다.
5년 뒤인 1969년, 아이작 헤이즈는 이 3분짜리 팝 발라드를 완전히 다른 곡으로 만들었다. 앨범 Hot Buttered Soul의 첫 트랙으로 실린 그의 버전은 12분에 달한다. 현악과 오르간이 만드는 웅장한 서주가 2분 넘게 이어진 뒤에야 헤이즈의 목소리가 들어오고, 기타리스트 해럴드 빈(Harold Beane)의 솔로와 두꺼운 베이스 라인이 곡을 길게 늘어뜨린다.
이 앨범은 1969년 6월 발매돼 R&B 앨범 차트 1위, 빌보드 200 8위에 올랐고 미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았다. 평단은 이 작품을 두고 "심포닉 소울(symphonic soul)"이라는 말을 썼다 — 짧은 팝송을 오케스트라 규모로 확장해 소울 음악의 러닝타임 자체를 바꿔놓은 순간으로 꼽힌다.
두 걸음이 만나는 지점
조니워커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 전진이다. 1820년 식료품점에서 시작해 200년 넘게 "여전히 건재하다"고 말해온 브랜드는, 걸음을 멈춘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정체성으로 삼는다.
"Walk On By"의 걸음은 정반대다. 아픔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무너지는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지나쳐 걷는 걸음이다. 그런데 아이작 헤이즈는 이 회피의 순간을 3분에서 12분으로 늘리면서, 오히려 그 도피를 가장 웅장하고 느린 걸음으로 바꿔놓았다. 빨리 지나치려던 마음이, 헤이즈의 손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순간이 됐다.
같은 "걷기"라는 동사를 두고, 하나는 멈추지 않기 위해 걷고 다른 하나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걷는다. 그런데 그 도피의 걸음마저 끝까지 걸어보면, 가장 당당한 순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헤이즈는 12분에 걸쳐 보여준다.
페어링하는 법
록 글라스에 조니워커 블랙 라벨을 따른다. 큰 얼음을 한 덩이 넣어도 좋고,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다 — 여러 지역의 원액을 섞은 블렌드라 어느 쪽이든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곡을 재생하고, 2분 넘게 이어지는 현악과 오르간의 서주를 들으며 천천히 첫 모금을 머금는다. 서두르지 않는 게 핵심이다 — 이 곡 자체가 서두르지 않기로 작정한 곡이니까. 헤이즈의 목소리가 마침내 들어오는 순간, 두 번째 모금을 삼킨다. 피니시에 남는 은은한 연기가 그의 저음과 함께 오래 머문다.
추천 표현: Johnnie Walker Black Label(조니워커 블랙 라벨) — 스코틀랜드 전역의 원액을 흔들림 없이 묶어내는, 이 브랜드의 기준점 같은 병이다.
마무리
하나는 200년 넘게 멈추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이름을 지켰고, 하나는 멈추고 싶은 순간을 12분으로 늘려 오히려 가장 오래 기억되는 걸음이 됐다. 오늘 밤, 잔을 채우고 이 곡을 걸어보자. 어떤 걸음이든, 끝까지 걸어봐야 그 진짜 모양을 알 수 있다.
트랙: Walk On By 아티스트: Isaac Hayes 수록 앨범: Hot Buttered Soul (1969, Enterprise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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