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usicBrainz Cover Art Archive — 자유 라이선스 아님, 레이블/저작권자 소유
Doris Duke — To the Other Woman (I'm the Other Woman): 빌보드 R&B 7위에 오른 가수는, 자기 이름조차 검색에서 찾을 수 없었다
들어가며
"Doris Duke"를 검색하면 지금도 가장 먼저 나오는 결과는 담배 재벌 상속녀였던 억만장자 도리스 듀크다. 1970년 빌보드 R&B 싱글 차트 7위에 오른 노래를 부른 가수 도리스 듀크는, 정작 자기 이름으로 검색해도 자기 자신이 잘 나오지 않는 처지가 됐다.
이 혼동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평단이 "역대 최고의 딥 소울 앨범" 중 하나로 꼽는 음반을 낸 가수가, 이름조차 온전히 자기 것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조지아의 목사 딸에서 뉴욕 세션 가수로
본명 도리스 커리는 1941년 5월 조지아주 샌더스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스펠 그룹에서 노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63년 무렵에는 뉴욕으로 옮겨 아폴로 극장 무대의 세션·백업 싱어로 일하고 있었다.
이 시기 모타운에서 데모까지 녹음했지만 정식 발매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966년 결혼한 이름으로 첫 싱글 "Running Away from Loneliness"를 냈으나 반응이 없었고, 이후로도 몇 년간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눈에 띄지 않는 세션 가수로 남아 있었다.
스웜프 독이 지어준 이름, "도리스 듀크"
전환점은 1969년 프로듀서 제리 "스웜프 독" 윌리엄스 주니어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커리의 목소리에서 특유의 처연함을 알아보고 그를 "도리스 듀크"라는 이름으로 다시 데뷔시켰다.
두 사람은 조지아주 메이컨의 캐프리콘 스튜디오에서 데뷔 앨범 I'm a Loser를 녹음했다. 스웜프 독은 훗날 이 목소리를 두고 "빌리 홀리데이에 비할 만한, 노래마다 그 사연을 정말로 살아온 것처럼 들리게 하는 슬픔의 질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To the Other Woman, 반짝인 성공과 무너진 레이블
앨범에서 먼저 싱글로 나온 곡이 스웜프 독과 개리 U.S. 본즈가 함께 쓴 "To the Other Woman (I'm the Other Woman)"이다. 유부남의 정부(情婦) 입장에서, 그의 아내가 자신보다 결국 더 큰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담담히 받아들이는 화자의 심경을 담았다.
노래 속 화자는 주변의 손가락질을 알면서도 이 관계를 인정하며, 그럼에도 본처의 자리는 넘볼 수 없다는 걸 스스로 되뇐다.
이 곡은 1970년 초 빌보드 R&B 싱글 차트 7위, 핫 100 50위까지 올랐다. 후속 싱글 "Feet Start Walking"도 R&B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흐름이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소속 레이블 캐년 레코드는 이미 재정난을 겪고 있었고, 1970년 8월 결국 파산했다. 앨범이 벌어들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듀크는 로열티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역대 최고의 딥 소울 음반" 이라는 뒤늦은 평가
I'm a Loser는 발매 당시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평가가 높아진 음반이다. 딥 소울이라는 장르 개념을 정립한 평론가 데이브 고딘을 비롯한 후대 비평가들은 이 앨범을 두고 "역대 최고의 딥 소울 음반 중 하나"라고 평했다.
비평가들이 짚는 지점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감정의 진솔함이다. 수록곡 "I Don't Care Anymore"에 대해서는 체념과 절망이 뒤섞인 감정을 완벽하게 담아냈다는 평이 따라붙는다. 도리스 듀크는 성량이나 기교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데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가수였다는 것이다.
좋은 평, 적은 판매, 그리고 완전한 은퇴
캐년 레코드가 무너진 뒤 듀크는 1971년 두 번째 앨범 A Legend in Her Own Time을 냈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재혼 후에는 한동안 음악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기도 했다.
1973년 메인스트림 레코드, 1974년에는 영국 콘템포 레코드와 계약해 앨범 Woman을 냈다. 이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판매로는 이어지지 않았고, 이후 듀크는 사실상 음악계를 완전히 떠났다. 1981년 보스턴에서 녹음한 싱글 한 장이 그의 마지막 발매작으로 남았다.
2019년 3월, 도리스 듀크는 뉴저지 뉴어크에서 일흔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음악 매체 대부분에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지나갔다.
지금 다시 들어야 하는 이유
도리스 듀크는 애매하게 묻힌 가수가 아니다. 빌보드 R&B 차트 7위까지 오른, 분명한 히트곡을 낸 가수였다. 그런데도 레이블 파산이 성공의 관성을 끊었고, 세월이 지나 평단이 뒤늦게 가치를 알아봤을 땐 대중의 관심이 따라오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름마저 억만장자 상속녀에게 가려졌다.
"To the Other Woman"을 지금 들어보면, 화려한 기교 없이도 한 문장 한 문장에 감정을 눌러 담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검색창에 이름을 쳐서 진짜 그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이 가수를 발견하는 첫걸음이다.
수록 앨범: I'm a Loser (1970, Canyon Records) 아티스트: Doris Duke 최고 순위: 빌보드 Hot R&B Singles 7위, Hot 100 50위 ("To the Other Woman (I'm the Other Woman)") 추천 청취 환경: 비 오는 밤, 턴테이블에 오래된 LP를 올리듯
격주 금요일, 우리가 고른 R&B
금요일 밤의 R&B 5곡 · 이번 주 Hidden Gems · 위스키 한 잔과 한 곡 — 2주에 한 번,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